북리뷰

-북리뷰-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를 읽고- 동양의 일원론과 서양의 이원론사이에서 일원론을 더 지지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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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리틀도서관 작성일20-06-29 00:00 조회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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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일원론(불교)와 서양의 이원론(기독교)를 비교하며, 나와 우주를 연결하는 일원론적 가치관을 일상에 녹여낼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해 준다.
책은 ‘파잔은 코끼리의 영혼을 파괴하는 의식이다’로 시작한다. ‘나’라는 독자에게 프롤로그는 성공적이었다. 아기코끼리를 길들여 그 등에 관광객을 태워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를 몰입시키기에 충분했다. ‘저항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몇 날을 굶기고 구타하는 의식은 코끼리의 영혼을 부서지게 한다. 마침내 아기코끼리는 엄마를 찾아선 안 된다는 것과 몽둥이의 고통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한편 몽둥이를 든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구타를 멈출 수가 없다. 그들의 영혼인들 온전할 수 있겠는가. 우리들 모두는 매 맞는 코끼리이자 동시에 몽둥이를 든 자이다.(4~5쪽)’ 이와 비슷한 생존 현장을 요양병원에서 목격한 적이 있다. 그 곳에 가면 의사, 간호사, 간병인, 청소부 등 수많은 사람들의 생존이 먹이사슬처럼 얽혀 있는 것이 감지된다. 당연히 먹이사슬의 맨 아래에는 노인들이 있다. 노인들은 죽음에 도달할 때까지 산 사람들의 생계를 돕기 위해 영혼을 저당 잡혀야 한다. 죽기 전까지 산 사람들을 위해 적선을 하는 것이다. 아기코끼리도 마찬가지다. 영혼이 부서져가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시를 하는 것이다. 노인은 적선하는 줄 모르면서 적선을 하고 아기코끼리는 보시를 하는 줄 모르면서 보시를 한다. 이 세상이 굴러가는 이치가 그러하지 않겠는가!

책은 ‘현실너머’를 통해 ‘현실’의 인간이 보다 인간답게 사는 길을 모색한다. 저자는 길을 제대로 찾았다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과학과 고전을 동시에 두루 탐구해 가는 여정을 꼼꼼하게 담는다. 그 길을 찾기 위해 저자가 얼마나 절박하고 철저했는지는 목차의 순서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이성너머’ ‘현실너머’의 신비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우선 광활한 우주에 대한 현대 과학부터 야심차게 거론한다. 이어 인류 종에 대한 진화론까지 샅샅이 훑은 뒤에야 마침내 인간의 자아를 파헤친다. 장구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동서양의 스승들을 만나고 여러 고전을 해독하는 저자와의 동행은 무척 즐거웠다. 하지만 책 전반에 걸쳐 독자를 가르치려 드는 ‘스승식’의 어조는 거슬렸다. 물론 저자가 섭렵한 방대한 지식과 깨달은 바를 중생인 우리들에게 간곡히 전달하고자 하는 선한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당신은~이러저러 해라’식의 어조는 과유불급이었다. 저자를 제외하는 ‘당신은~’ 보다는 저자를 포함하는 ‘우리는~’으로 했더라면 더 공감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저자는 위대한 스승과 거대한 사상을 추적하는 그 과정에서 동양의 일원론과 서양의 이원론이라는 두 물줄기를 도출해 낸다. 그 갈림길에서 저자는 ‘자아와 세계는 하나’라는 일원론을 지지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마침내 길을 찾은 저자는 ‘내가 곧 우주, 자아는 곧 세계라는 범아일여(梵我一如)’와 ‘세계는 자신의 마음이 창조한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금과옥조로 삼고 광대한 우주와 자신의 내면을 일치시켜 나가는 모험을 떠나리라. 일원론적 세계관을 진리나 신념으로 삼고 불혹(不惑)의 40대답게 ‘흔들림 없이’ 매진하리라.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러 또 다른 하늘의 소리, 우주의 소리, 자아의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미혹됨 없이 확고한 신념(아집)대로(40대) 살기도 하고 천명대로(50대) 살기도 해야 마침내 경청의(60대) 나이 이순(耳順)에 제대로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청년기의 신념을 노년기에도 고수하려는 사람들이 허다하지만 저자는 그러지 않을 것 같다. 저자는 ‘모든 존재는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어 발생하므로 실제로는 고정된 자기 본질을 갖지 않는 공(空)의 상태’(369쪽) 라는 것을 긍정하니까. 그렇다! 시절이 변하고 조건이 변하고 상황이 변하고 인연이 변하면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신과 인간을 분리하고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명확히 하는 이원론을 기반으로 서양은 오랫동안 이 세계를 쥐락펴락 해왔다. 그 탓에 인간의 지배아래 놓인 자연은 고통을 겪고 경쟁과 억압에 지친 인간의 삶 또한 삭막해졌다. 저자가 일원론으로 기울게 된 것은 개인의 성향 탓도 있겠지만, 자연과 인간 모두 황폐함이 극에 달한 이 시대의 요청일 수도 있다. 인연과 조건에 따라 생멸이 일어난다는 불교의 연기설(緣起說)에 의하면 사상 철학 종교 등도 조건에 따라 흥망성쇠를 겪는다. 그동안 이원론의 기독교가 승승장구했다. 이방인 동양인에게까지도 위안을 줄 정도로 보편화되면서 막강한 세계적 종교가 되었다. 이제 그 위상을 불교가 대신 차지할 날이 올 수도 있다. 그 여부는 미국과 대적하고 있는 중국이 상황과 조건을 만들어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좌우된다. 그렇지만 경제 성장에 올인하는 중국이 과연 일원론을 견지하면서 이 우주를 덜 고통스럽게 할 것인지, 자연을 덜 오염되게 할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또 ‘대한민국과 중국은 하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우리나라에 서서히 잠입해 들어오게 될까봐 염려스럽다. 아차! 걱정할 일이 아니다! 중국은 내가 하기 나름이니까. 수많은 '나'가 바뀌면 거대한 중국도 그 흐름을 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원론적 세계관의 유효성이다. 저자는 ‘현실을 조화롭게 모색하도록 하는 탈속의 도가와 세속의 유가, 현실너머의 초월적 불교가 모여 중국사상을 이룬다.’고 정리했다. ‘현실’과 ‘현실너머’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중국 사상이라는 의미이다. 저자가 찾던 바로 ‘인간을 인간답게’하는 것과 연결될 수 있는 사상이다. 내가 바뀌면 그 파장이 세계를 바꾸고 중국을 바꿀 것이다! 내가 곧 세계이므로.

문제는 저자의 말마따나 ‘동양인으로 태어나 훌륭한 서양인이 된‘ ’나‘라는 사실이다. 나에게 일원론적 사상의 불교는 버겁다. 너무 고차원적 인간을 원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통증이 온 몸을 휘감아도 마음은 동요하지 않는 경지의 깨달음을 요구한다. 또 다가오는 죽음을 인식하더라도 두려움에 떨지 말고 의연한 인간이기를 바란다. 불교는 수행이나 명상으로 내 마음이 지어낸 고통과 두려움을 직시하라고도 한다. 하지만 동물성을 완전히 거세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인 나는, 나와 분리된 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대고 싶을 때가 있다. 중생들 대부분은 ’내 안의 부처‘를 알아채기 보다는 나와 분리된 부처를 우러러보며 합장하고 머리 조아리며 복을 빈다. 신의 자리에 부처를 대신 두고 신을 대하듯 부처를 믿는다. 중생들에게는 일원론적인 불교와 이원론적인 기독교가 대상만 다를 뿐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여기서 이원론적인 기독교가 왜 오랫동안 세계를 점령해 왔는지 헤아릴 수가 있다. 이원론적 세계관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통의 인간, 즉 중생들이 쉽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원론적인 세계관이 보편적인 우리 인류에게 무가치했던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원론적 세계관과 종교가 그동안 서양을 번성시키는 버팀목의 역할의 해왔다는 것만으로도 쓸모없는 사상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기적 인간 종인 나는 이원론과 일원론 중에서 어느 하나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다. 때로는 내 속의 신성을 염두에 두는 일원론의 길을, 때로는 나와 분리된 신의 이름을 부르는 이원론의 길을 갈 것이다. 일원론과 이원론, 두 사상 모두 유구한 세월 동안 인류를 지켜온 위대한 지혜이다. 그 중의 하나를 내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둘 중 어느 하나만을 삶의 지침으로 고정하지는 않으련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생존과 방어에 유리한 어떤 하나가 저절로 나에게 다가와 손 내밀어 잡아줄 것을 믿는다. 나는 그 손을 가리지 않고, 뿌리치지 않고, 꼭 잡게 될 것이다. 보통사람인 내가 이원론과 일원론을 이해하기 쉽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준 저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특히 일원론의 세계에 발을 내딛도록 성심성의껏 안내해 준 저자에게 고맙다. 일원론의 매력을 접하게 되었으므로 이제 일원론을 알기 전과 후의 삶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아니 이미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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